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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2 참담하고 무모했던 반격작전[3] (23)
  2. 2010.05.26 '구국의 영웅, 소년 전차병' (14)

참담하고 무모했던 반격작전[3]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7.22 08:17
    제 5보병연대 2대대가 축석령에 도착할 무렵, 북한군 제3 보병사단과 제109 전차연대는 의정부 함락을 목표로 진격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2대대장 차갑준 소령은 축석령에 제 7 보병사단에 배속된 3 보병연대 병력이 방어 중이므로 이 곳에 합류하여 보급 차량을 기다리기로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2대대 병사들이 축석령에 도착해 보니 이 곳을 지키고 있어야할 3 보병연대가 흔적조차 없이 그저 제9 보병연대와 제3 보병연대 소속 패잔병 몇 명이 갈피를 못잡고 허둥대고 있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도대체 제3 보병연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6월 25일 17~20시에 걸쳐 벌어진 송우리 전투의 참패였습니다.
  6월 25일 14시에 긴급 증원돼 15시경, 경기도 포천시 남쪽의 소홀읍에 위치한 송우리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던 제3 보병연대는 아직 진지 구축이 완료되지도 않은 17시에 북한군 제3 보병사단 7 보병연대와 제109 전차연대의 T-34/85 10여대, 그리고 Su-76 대전차 자주포와 각종 차량 합계 150여대에게 기습 공격을 받은 것이죠.
  제7 보병연대장 김창봉 대좌는 T-34/85들이 제3 보병연대의 57mm 대전차포 및 2.36인치 바주카포 공격을 성공리에 막아내며 포격을 퍼붓는 틈을 타 과감한 돌격명령을 하달함으로써 간단하게 제3 보병연대의 방어선을 붕괴시키고 20시를 기해 송우리를 함락시키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워낙 다급한 상황이다 보니 제3 대대장이 연대장의 승인 없이 부대를 철수시킬 정도였습니다 )
  개전 초반 서부전선에서 T-34/85가 보여준 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연막차장을 터뜨린 틈을 타 초월하는 K-1 전차. T-34/85에게 짓밟힌 지 60년이 되는 오늘날 한국군은 1,027대의 K-1 전차와 484대의 K1A1 전차를 보유한 강군으로 거듭났습니다.
  전차는 보병용 대전차 화기가 급격히 발달한 오늘날에도 위력적인 지상의 왕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이 전투에서 제3 보병연대는 T-34/85 1대를 도로변 배수로에 빠뜨려 기동불능 상태에 처하게 한 것을 제외하면 북한군 제3 보병사단에게 완전히 압도당해버렸습니다.
  문제는 이 송우리 전투 한 번으로 제3 보병연대가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점이었죠.
  당연히 후방의 축석령에 방어선을 구축하여 적의 진격을 차단한다는 것은 이미 물 건너 간 셈이었습니다.
  차갑준 소령은 크게 당황했고 예하 중대장 및 대대 참모들과 대책을 강구했지만 때마침 송우리를 돌파한 제109 전차연대의 T-34/85들이 V-2-34 520마력 디젤 엔진의 굉음을 내며 축석령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차갑준 소령은 어쩔 수 없이 대대를 축석령 좌·우에 배치해 방어를 시도했지만 고갯길로 올라오는 T-34/85는 2대대 병사들이 사격한 2.36인치 바주카포와 수류탄 공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내며 도리어 DT 동축 기관총탄을 흠씬 퍼부어주었기 때문에 곧 공황상태가 발생했습니다.
  T-34/85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꾸준한 개량을 거쳤고 특히 우수한 경사장갑은 실제 두께의 2배가 넘는 방어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한국군 병사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방문자 분들 중 혹시 소대장이나 중대장을 역임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병사들은 공포를 정신적으로 통제하기가 가장 어려운 이들입니다.
  이들이 공포에 질려 진지를 이탈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붕괴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2대대는 다행스럽게도 오전 9시에 1대대가 증원되고 김계원 소령이 지휘하는 포병학교 교도대의 M3 105mm 곡사포대가 도착해 지원 포격을 가함으로써 간신히 축석령을 사수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전선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는 것이 명확해졌고 이에 따라 추가적인 후속 대책이 필요했지만 시간은 한국군을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특히 제7 보병사단의 처참한 반격작전이 더욱 그러했죠.
  제2 보병사단 "노도부대"가 축석령 일대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던 6월 26일 오전 8시, 제7 보병사단은 1 보병연대와 18 보병연대를 앞세워 함락된 동두천을 탈환하기 위한 반격작전을 개시합니다.
  초전은 제7 보병사단의 완승!
  제1 보병연대는 '설마 한국군이 역습을 할까?'라는 생각으로 방심하고 있던 북한군 제4 보병사단의 소부대를 격파하고 오전 10시를 기해 동두천을 탈환함은 물론 소요산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문제는 행운은 여기까지 였다는 점이죠.
  바로 덕정 방면으로 진격하던 제18 보병연대의 진격로를 향해 북한군 제4 보병사단의 주력이 진격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방어선을 구축할 때는 인접 부대가 붕괴될 경우 그 틈새로 치고 들어온 적군에 의해 포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항상 통신 유지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동두천 방면으로 반격작전을 감행한 제1, 18 보병연대는 너무 늦은 철수명령과 때마침 들이닥친 북한군의 맹공이라는 두 가지 악재를 맞이했습니다.
  사전에 북한군의 진격을 예상치 못했던 제18 보병연대는 봉암리에서 제107 전차연대의 T-34/85를 앞세운 제4 보병사단의 맹공을 얻어맞고 와해되었습니다.
  제18 보병연대를 와해시킨 제4 보병사단은 때마침 제303 수색대대로부터 소요산 방면까지 진출한 제1 보병연대의 소식을 전해듣고 곧바로 덕정 방면으로 진출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제1, 18 보병연대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었죠.
 
자신들의 퇴로가 차단당할 위기에 처한 제1, 18 보병연대는 어떻게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14시를 기해 사단 사령부로부터 철수명령을 하달받게 됩니다.
  제 발로 걸어나와준 한국군의 무모한 작전으로 인해 북한군은 보다 쉽게 서울을 함락시켰습니다.
  사전에 치밀한 전쟁준비와 더불어 상대방의 결정적인 실책까지 겹친 행운으로 인해 우리 군은 건국 이래 최악의 수모를 겪고 만 셈이죠.
  그런데 그 철수명령의 내용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바로 축석령이 북한군 제3 보병사단에게 돌파당해 의정부가 위험하다는 것!
  제1, 18 보병연대는 퇴로가 완전 차단됨은 물론 적 후방에 철저하게 고립된 셈이었습니다.
  결국 퇴로가 완전히 차단돼 부대 건재를 유지한 채로 철수할 수 없게 된 제1 보병연대는 소대별로 자력 행군하여 우이동과 창동, 태릉 방면으로 철수합니다.
  그 시각 한국군의 무모한 반격작전을 거뜬히 막아낸 북한군 제3, 4 보병사단은 60여대의 T-34/85를 집결시켜 최후의 방어선인 미아리와 창동 방면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동두천-포천 지구 반격작전의 전훈은 오늘날 후방에 특전사 제7, 11, 13 공수여단 및 특공여단 등 예비전력을 충분히 배치하게 했습니다
  만약 제2, 7 보병사단이 후속 부대의 도착을 기다려 충분한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지연전을 수행했다면 전황은 이렇게 치명적으로 악화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특히 무모한 작전 명령을 하달한 채병덕 총참모장의 책임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며 명령을 거부한 제2 보병사단장에게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당시의 전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옳은 행동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여하튼 이 무모한 반격작전은 전반적인 전황에 파국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6월 28일, 개전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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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영웅, 소년 전차병'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5.26 09:30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전장으로 뛰어든 학도병 71명의 실화를 다룬 영화 "포화 속으로"
  하지만 이들 못지 않게 어쩌면 더욱 위험한 임무에 자원한 이들이 있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실제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남성들의 로망이자 정예 병과의 상징인 기갑! 이 전차를 조종하기 위해 오늘날에도 논산훈련소에서 선발돼 전남 장성의 육군 기계화학교에서 땀방울을 흘리고 있을 많은 대한의 건아들이 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 기갑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Capt. Lee, Young-Soo )
  M36 "잭슨" 구축전차 앞에서 포즈를 취한 강성교 하사와 오승환 하사. 
  세월이 흐를수록 작고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 큽니다( 본 포스트의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 기간 중 숱한 희생을 치른 이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의 공부를 포기하고 망설임없이 총을 든 채 전장으로 향한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학도병이라 불렀고 6월에 개봉할 예정인 이재한 감독의 "포화 속으로"는 제3 보병사단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스스로 후방 엄호를 자원, 북한의 정규 보병사단을 상대로 11시간이나 방어해낸 학도병 71명의 숭고한 희생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학도병 못지 않게 참혹했던 전장에서 더욱 분투하며 최후까지 싸웠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계셨으니 바로 소년 전차병들이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학업을 포기하고 망설임없이 전차병으로 입대해 M36 "잭슨" 구축전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한 소년 전차병들.
  이들은 평균 17~18세의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조국을 구하겠다는 신념은 성인들 못지 않았습니다.
  전장이 오늘날의 휴전선 일대로 축소되고 양측의 지리한 대치전과 고지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던 1952년 4월, 병무청의 모병관들은 날이 갈수록 인원 부족이 속출하는 기술병, 그 중에서도 장차 육군의 주축이 될 전차병들을 모집하기 위해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상대로 입영을 권유했습니다.
  당시 전쟁이 끝난 이후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엘리트의 길을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하사관으로 임관해 일본에 6개월 동안 기술 교육연수를 보내주겠다"는 모병관의 설명에 많은 학생들이 자원해 이 중 120명이 선발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전차병들은 논산훈련소에서 선발돼 장성의 육군 기계화학교로 이동하여 후반기 교육을 이수하여 정예 전차병으로 태어납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 기갑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Captain. Lee, Young-Soo )
  1952년 10월 25일, 육군 보병학교 전차교육대에서 거행된 소년 전차병 1기 수료식 기념 사진.
  하지만 애시당초 약속과 달리 이들 120명은 하사관이 아닌 일반 병사의 신분으로 논산의 제2 훈련소에서 보병 기초 교육훈련만을 수료한 다음 광주의 육군 보병학교 전차 교육대에서 3개월의 후반기 교육훈련을 이수했습니다.
  그야말로 속을대로 속은 것이지만 이 분들은 군말없이 혹독한 전차병 훈련을 마쳤고 마침내 10월 25일, 소년 전차병 제1기이자 육군 보병학교 전차 교육대 7기의 수료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당시 평균 17~18세의 어린 학생들이었던 소년 전차병들은 약속했던 일본 교육연수 및 하사관 임관을 하지 못한데 대한 불만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자대 생활을 해나갔습니다.
  수료식 이후 1주일 간의 휴가를 얻어 집에 다녀온 소년 전차병들은 11월 초, 한국군 최초의 전차인  M36 "잭슨" 구축전차 22대와 M32 구난전차 1대를 수령해 본격적인 운용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제57 전차중대 2소대원들의 기념 사진. 당시 제57 전차중대는 4개 소대로 편성돼 육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의 작전을 지원했습니다.
  마침내 11월 15일, 소년 전차병들이 주축이 된 제57 전차중대가 창설돼 지속적인 적응훈련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2월, 치열한 전장에서의 다급한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57 전차중대의 전선 투입이 시작되면서 이들의 활약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제57 전차중대는 중대장 박우춘 대위를 포함한 7명의 장교와 병사 120명으로 편성되었는데 총 4대 소대로 분산되어 육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의 작전을 지원했습니다.
  오늘날 전차는 유개식, 즉 상부 장갑판이 완전히 덮여 있지만 구축전차인 M36 "잭슨"은 상부 장갑판이 없어 적의 박격포탄이나 포탄 파편으로 인해 사상자가 속출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 기갑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Captain. Lee, Young-Soo )
  문제는 이들이 운용한 M36 "잭슨"이 일반 전차가 아닌
대전차 임무에 특화된 구축전차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해 북한군이나 중공군의 박격포 사격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소년 전차병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군의 고지 쟁탈전을 화력지원했고 주간에 발사된 90mm 포탄 세례로 중공군과 북한군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1953년 3월, 유명한 김만술 상사의 베티 고지 쟁탈전에서 M36 "잭슨" 2대가 박격포탄에 피격돼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소년 전차병들은 사격을 지속한 결과 제57 전차중대의 화력 지원으로 중공군이 격퇴되었고 노리 고지 쟁탈전에서도 이들의 활약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런 격전의 와중에 소년 전차병들의 야전생활은 고난의 연속 그 자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고된 야전생활을 견뎌낸 소년 전차병 생존자 분들. 이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차량이 올라오기도 힘든 고지 정상부에서 M2HB 중기관총용 탄통에 쌀을 씻어 밥을 지어먹으며 주간에는 화력 지원을, 야간에는 야음을 이용해 전차를 급습하려는 적을 경계하기 위해 잠도 제대로 못 이루는 생활이 연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고난을 극복하며 끝까지 싸운 이들 소년 전차병들의 활약으로 휴전 직전까지 서부전선은 안정되었지만 휴전을 불과 2개월 앞둔 1953년 5월, 264 고지 전투에서 제1 소대장 박승일 소위가 적탄에 피격돼 전사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소년 전차병들의 후예, 오늘날 한국군의 기갑병들은 60년 전 북한 제105 전차여단이 침공했던 서부전선을 굳건히 사수하고 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 기갑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Captain. Lee, Young-Soo )
  휴전 이후 제57 전차중대는 해체돼 일부 소년 전차병들은 그대로 군에 남아 간부가 되었지만 전역한 이들은 전쟁 기간 중 전차병의 고된 후유증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공부를 포기하고 스스로 전차병이 되어야 했지만 정작 국가는 이들의 희생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해주지 못했지만 지난 2005년 5월, 제28 보병사단 관할인 태풍 전망대에서 소년 전차병 생존자들이 주축이 되어 박승일 소위의 추도식이 열리고 기념비가 세워지는 등 오랫동안 잊혀졌던 소년 전차병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박승일 소위가 전사한 264 고지에 건립된 소년 전차병 기념비. 오랜 세월 잊혀졌지만 이제 이 분들의 노고가 인정받게 되어 다행입니다.
  6.25 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2010년에도 소년 전차병들이 지켜낸 조국은 후배들의 손으로 굳건하게 유지될 것입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 기갑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Captain. Lee, Young-Soo )
  여러분, 올해는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직 우리 주위에 참전을 하여 불구가 되거나 고통을 받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마땅히 위로하고 그 분들의 노고를 치하해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소년 전차병 전우회 홈페이지 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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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6 전차대대 2010.05.26 1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2기갑여단 오랜만에 봅니다.

    전역한 지 1년 4개월이지만 정말 반갑네요.

    파주 훈련장에서 촬영하셨나요? 정말 멋진 장면입니다.

    • Koreanwar60 2010.05.26 1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훈련 촬영하던 날 지형이 역광방향이라 촬영에 적잖이 애를 먹었지만 든든한 88 전차대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2. 서현석 2010.05.26 1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년 전차병들의 활약상 잘 보고 갑니다.

    28 사단 전차대대 오랜만에 보네요.

  3. 23523 2010.05.26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분들의 목숨건 사투가 있었기에 지금의 조국이 있음에도 아직 정신못차리고 데모질에 북한편에 돌아서서 반미친북 시위나하는 정신나간 이들이 있으니 걱정이 앞섭니다..

    • Koreanwar60 2010.05.26 1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금에 들어 안보의식이 많이 약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북한의 대남 적화 야욕이 강성함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인 평화만을 제창함은 분명 문제가 있지요.

  4. 이성복 2010.05.26 2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년도 3월에 전역한 제 아들이 근무하였던 부대입니다. 2기갑여단 화이팅!

  5. 방자 2010.05.27 0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소년전차병 1기 수료식 사진속에 내 큰아버님이 계십니다. 언젠가 하신 말씀중에 '나라를 위해 자원해서 입대를 했지만 정말 전투중에 죽다 살아나기를 몇번 하고 나니까 조국이고 나발이고 적에 대한 적개심이 우선시하게 되어 물불 안가리고 싸우게 되더라" 라고 하신게 생각나는군요.
    당시 입은 부상으로 인해 평생 고생하고 계시지만 아직까지 생존해 계십니다.

  6. mami5 2010.05.27 08: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병은 살아 있다..^^
    늠늠하신 모습 보기 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7. 흠!~ 2010.06.05 2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 관리좀 하시지

  8. 강여은 2010.07.11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화 속으로 이번에 CGV에서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권상우 오빠 정말 멋졌습니다.

  9. buddy printer ink ink cartridge bulk 2012.05.14 1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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