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본 6ㆍ25전쟁(1) <존 포드 감독의 '이것이 한국이다'>

생생! 6·25/할리우드가 본 6·25전쟁 2012.01.20 07:29

 '아바타'라는 영화가 국내 개봉영화 흥행순위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가 2009년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외화가 국내 영화를 제치고 흥행순위 1위를 기록한 것은 1998년 2월 개봉된 '타이타닉' 이후 처음이다. 흥미롭게도 역사적인 흥행기록을 세운 '아바타'와 '타이타닉'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James Francis Cameron·1954~ )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들이다.

 필자는 본격적인 3D 영상혁명이라고 평가받는 '아바타'를 보면서 "영화는 시대정신이 반영된 종합예술이다"는 말을 실감했다. 가상과 현실이 일체화돼 가는 오늘을 사는 우리 생활의 단면이 이 영화에 투영됐음을 느꼈다. 

 동시에 필자는 엉뚱하지만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그의 나이보다 60년 앞선 1894년에 태어났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2년전이 6·25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랬더라면 그는 1950년 6월 27일 오전(한국시간 6월 27일 밤), 전쟁 발발 이틀 후에 발표된 트루먼 대통령의 대국민성명을 들었을 것이다.

 "한국 내부의 안정과 국경침범을 경계하기 위해 무장을 하고 있던 한국 정부군이 북한 침략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침략군에게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38선 이북으로 물러가도록 요구했습니다. 북한군은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공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안보리는 전 유엔 회원국에게 유엔 결의안을 이행하는 데 모든 지원을 해주도록 요구했습니다."

 또 카메론 감독은 1953년 7월 26일 밤(한국시간 7월 27일 오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휴전을 알리는 대국민성명도 들었을 것이다.

 "오늘 밤, 바로 한 시간 전에 한국에서 휴전이 서명되었습니다. 이로써 유엔군과 공산군 간의 전투는 종료되었습니다. 우리 미국에게 공산 침략을 물리치는 대가는 매우 컸습니다. 수많은 가정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대가를 치렀고, 그것은 비극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필자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그 당시에 살았더라면 미국의 젊은이들이 한반도에서 흘린 피를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공교롭게도 그보다 60년 전에 태어난 할리우드의 명감독 존 포드(John Ford·1894~1973)와 마찬가지로 6·25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하나 정도는 남기지 않았을까 한다. 


[존 포드 감독]

 카메론은 포드와 같이 이야기의 깊이를 추구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포드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 오늘의 제임스 카메론이 있다면, 그때에는 존 포드 감독이 있었다. 포드는 미국 영화계의 독보적인 영화 작가이자 영원한 전설이라고 불린다. 

 그는 서부영화 최고의 명작 ‘역마차(Stagecoach·1939)’를 비롯해 ‘수색자(The Searchers·1956)’,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1940)’ 등 140편의 작품을 남겼다. 아카데미 최우수 감독상을 4회나 수상한 그의 최다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존 포드 감독은 1951년 ‘이것이 한국이다(This Is Korea)’라는 6·25전쟁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6·25전쟁에 관한 영화를 감독했다는 것을 아는 세계의 영화팬들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이 다큐는 미 해군이 미 국방부의 승인을 받아 제작한 영화이며, 미국 해군·해병대·육군·공군이 촬영한 동영상을 편집하고, 내레이션을 넣은 50분짜리 영화다.


['이것이 한국이다' 영화포스터]

 1951년 8월, 미국 전역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이 작품의 개봉을 알리는 영화포스터가 게시됐다. 세로 99㎝, 가로 63㎝ 크기의 포스터는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로 보는 이의 눈을 자극한다. ‘세 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에 빛나는 존 포드(註: 1952년 네 번째 수상)의 이것이 한국이다’, ‘가장 인간적이고 극적인 우리 시대의 이야기’, ‘짜릿한 감동을 주는 천연색 특선영화’

 이런 글귀와 함께 이 영화 포스터의 중간에는 열두 장의 흑백사진이 실려 있다. 아홉 장의 사진은 우리나라 아이들과 미군, 한 장은 우리나라 노인과 미군, 한 장은 우리나라 여인과 미군,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미군 혼자 등장하는 사진이다.

 전쟁의 끔찍한 포화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타이틀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의 시골 풍경으로 장면이 바뀐다. 순박한 사람들이 결혼하고, 널뛰며 평화롭게 사는 마을. 이 마을에 미군이 등장하고, ‘오, 작은 고을 베들레헴(O Little Town of Bethlehem)’이라는 감미로운 노래가 흐른다. 그리고 생명·자유·행복을 위한 미군의 행군과 전투. 특히 끔찍했던 한겨울의 장진호 전투 장면이 생생하게 전개된다. 

 영화 내용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보다는 독자들이 직접 감상해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무료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www.youtube.com)에 이 영화의 전체분량이 게시돼 있다. 영화관에서 보는 화질과 음향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의 관심은 다큐멘터리보다 극영화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나름대로 고찰한 바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는 6·25전쟁을 소재로 ‘이것이 한국이다’와 같은 다큐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극영화가 제작됐다. 전쟁 발발 후 올해까지 90편 내외의 극영화가 제작돼 상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영화 중에서 3분의 1 정도는 미국에서 DVD나 VHS비디오로 출시됐고, 일부 영화는 DVD로 국내에도 출시됐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영화팬들의 관심은 그다지 높지 못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올해는 우리가 한 번쯤 이들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때라고 생각한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을 한국인과 미국인이 우정의 피를 나눈 원년으로 본다면, 2010년은 한미 혈맹관계가 환갑(還甲)을 맞는 매우 뜻 깊은 해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 정부와 민간에서는 올해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을 일궈낸 우리의 저력을 보여주고, 한미관계의 심화·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2013년까지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다. 

 이를 보며 필자도 자그마한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을 가져보았다. 그간 해외에 근무하면서 6ㆍ25전쟁에 관한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 60장의 오리지널 영화포스터를 수집하고, 그들 영화에 대한 정보도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주부터 연재되는 본 특집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연재물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영화 속에 투영된 그때 우리나라와 미국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밝고 활기찬 한미관계의 내일을 설계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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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만큼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예술도 드물다. 6·25전쟁이라는 자유국가와 공산국가 간의 이념분쟁은 할리우드에서 다양한 영화의 형태로 표현됐다. 그러나 오늘,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인들에게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6·25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꼽으라면 5편 이상을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는 6·25전쟁을 배경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외하고도 90여 편의 극영화가 제작됐다. 3년간의 전쟁 기간 중에만 20편이 제작됐고, 휴전 후 1959년 말까지 42편이나 제작됐다. 미국인들의 전쟁에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표다. 영화의 주제 또한 사랑·애국·배신·세뇌·스파이·비밀임무 등 다양하다.

 
이런 다수의 영화 중에서 고전으로 분류돼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작품이 드물다. 그러나 전쟁 발발 60주년을 계기로 우리가 그간 접하지 못했던 6·25전쟁 관련 할리우드 영화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당시 미국인들의 가치관, 신념, 한국에 대한 인식들이 거기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한미관계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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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gento daily deal 2012.12.10 18: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물이 아주 좋은 그리고 감사합니다!

  3. magento reward points 2012.12.10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승! 15사단 38연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일병 홍원석 입니다.
    한국사에는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지금의 분단국가를 만든 6.25 같은 동족상잔의 전쟁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가장 큰 비극이라 생각합니다.

  4. du lich han quoc 2012.12.13 14: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이 내가 볼 수있는 좋은 공유합니다.

  5. du lich nhat ban 2012.12.13 14: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콘텐츠의 실제 조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관심과 함께 기쁨을 많이 날 수 있습니다.

  6. du lich hongkong 2012.12.13 14: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다수의 영화 중에서 고전으로 분류돼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작품이 드물다.

  7. tapetes para recepción 2013.01.08 14: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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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agento affilate 2013.01.08 1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これは私が読んでいる良い記事です。あなたの投稿に感謝します!

  9. magento reward points 2013.01.08 1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들 영화 중에서 3분의 1 정도는 미국에서 DVD나 VHS비디오로 출시됐고, 일부 영화는 DVD로 국내에도 출시됐다

  10. magento reward points 2013.01.08 1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들 영화 중에서 3분의 1 정도는 미국에서 DVD나 VHS비디오로 출시됐고, 일부 영화는 DVD로 국내에도 출시됐다

  11. magento one step checkout 2013.01.08 1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다큐는 미 해군이 미 국방부의 승인을 받아 제작한 영화이며, 미국 해군·해병대·육군·공군이 촬영한 동영상을 편집하고, 내레이션을 넣은 50분짜리 영화다.

  12. magento daily deal 2013.01.08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나 올해는 우리가 한 번쯤 이들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때라고 생각한다.

  13. magento mega menu 2013.02.28 1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한국에서도 한국의 감독과 배우들도 훌륭하게 만들어 낼테지만 제임스 스타일의 3D영화는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짜릿해지네요. 언젠가 6.25영화를 3D로 보게됬으면...

  14. magento banner 2013.02.28 1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승! 15사단 38연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일병 홍원석 입니다.
    한국사에는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지금의 분단국가를 만든 6.25 같은 동족상잔의 전쟁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가장 큰 비극이라 생각합니다.

  15. magento mega menu 2013.02.28 1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한국에서도 한국의 감독과 배우들도 훌륭하게 만들어 낼테지만 제임스 스타일의 3D영화는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짜릿해지네요. 언젠가 6.25영화를 3D로 보게됬으면

  16. magento banner 2013.02.28 1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의 관심은 다큐멘터리보다 극영화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나름대로 고찰한 바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는 6·25전쟁을 소재로 ‘이것이 한국이다’와 같은 다큐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극영화가 제작됐다

  17. Kevin 2013.04.05 2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그에 표시됩니다에 내가 정말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 놀라운 서비스를 공유 많이

  18. Chatrandom.com 2013.05.02 0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바타'라는 영화가 국내 개봉영화 흥행순위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가 2009년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외화가 국내 영화를 제치고 흥행순위 1위를 기록한 것은 1998

  19. onebuckresume 2013.08.04 2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치고 흥행순위 1

  20. cartoon network arabic 2013.08.15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시절의 아픈 기억들은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호주 공군 6ㆍ25전쟁 참전기(2/2)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1.14 13:15

 미그 15기 성능이 이렇게 막강했었던 것은 독일 메서슈미트 제트기에서 영향을 받은 유선형 날개와 영국 정부가 실수로 제공한 롤스 로이스 넨(NENE) 엔진을 카피 생산한 크리모프 RD-45 엔진의 덕택이었다. 넨 엔진은 미국이 해군 전투기 F9F 팬서기(6ㆍ25전쟁 참전)에 장착할 것을 검토하기도 했을 만큼 우수한 기능을 발휘했었다.

[미 해군 F9F 팬더기 - 미국 라이센스 생산 넨 엔진 장착을 계획하다가 변형하였다. 6ㆍ25전쟁에서  미그기들과 격돌하여 이를 격추하기도 했었다.]



 소련 미그 항공기 국은 신형기의 기체 디자인은 완료했지만 그 디자인을 뒷받침 해줄 엔진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다. 소련 엔진 설계자들은 허탕 칠 셈하고 영국에 엔진을 구해 보기로 했다. 그 때 영국에 갔던 디자이너 인솔자가 넨 엔진을 복사한 엔진을 만들어낸 크리모프였다.

 당시는 영국이 진보파인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었을 때다. 소련의 스탈린조차 영국이 그런 최고 기밀을 넘겨주겠느냐며 하며 믿지를 않았었는데 친소파인 상무장관 스테포드 크립스 경이 의외로 선선히 넘겨주어 MIG-15기의 탄생을 도왔다.

 영국의 챔버린 정부가 히틀러에게 유화 정책을 썼다가 큰 피해를 보았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실수를 했었다. 엔진 개발사 롤스 로이스 사는 소련이 불법 카피한 자사 제품에 대해서 로얄티를 제공받지 못했었다. 당시 넨 엔진은 그 후 소련이 개발하는 모든 제트 전투기와 제트 폭격기들의 시발점이 되었다.

 영국이 생각 없이 넘겨준 엔진은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결과를 가져왔다. 호주 공군 77비행대대의 기종 전환은 1951년 4월부터 7월 사이 일본 이와쿠니 기지에서 이루어졌다. 호주 공군 조종사들은 미티어 기의 성능에 상당한 자신을 가졌었다.

 하지만 현실을 냉혹하였다. 미티어 기가 작전에 전개 되면서 일본 이와쿠니 기지 상공에서 행해진 F-86기들과 모의 공중전들이 있었다.

[미티어 기]



 미티어 기는 이 F-86기와의 공중전에서 열세를 보였다. 단지 상승력이 약간 앞섰을 따름이다. 미그기를 상대해본 미 공군은 이 미티어 기가 미그 15기와 결투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 영국제 전투기에 대한 사용 영역에 대한 미 공군과 호주 공군 사이에 격론이 있었다. 호주 공군이 미티어 기가 원래 제작된 목표대로 요격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이었고 미국은 미티어의 성능과 변한 공중 작전 상황에서 필요한 지상지원을 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호주 공군은 미티어 기가 F-86기가 상승력에서 우세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저공에서도 선회 능력이 미그기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사실로 미그 15기를 상대할 만하다고 믿었다.

 미국ㆍ호주 공군 사이에 열띤 논쟁이 오갔지만, 호주 공군은 미군의 권고를 거절하고 미티어 기로 미그 15기와 맞서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공산기와 맞대결을 자주 해보아서 경험을 축적한 미 공군의 판단이 역시 맞았다.

 미티어 편대는 1951년 7월 29일 김포 비행장에서 최초로 북한을 향해 출격을 했다. 1951년 8월 29일 고대했던 미티어 기와 미그기의 결투가 압록강 상공에서 벌어졌다. 첫 대결은 미티어 기의 패배로 결말이 났었다.

 77 비행대대 미티어 조종사 론 거트리가 조종하는 미티어 기는 미그 15기에게 격추 당했다. 조종사 론 거트리 준위는 38,300 피트의 고공에서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하였다. 그는 피까지 어는 것 같은 차가운 고공 대기를 뚫고 지상까지 20분이나 걸려 낙하 했지만 멀리서 보고 달려와 대기하고 있던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포로 수용소에서 지내야했다.

[론 거트리 준위]



 1951년 12월 1일은 미티어 기 대참사의 날이었다. 14기의 미티어 기는 북한 북방에서 50여기의 미그 15기 대군에 습격을 받았다. 중과부적의 적 미그기들과 힘겨운 공중전을 벌였던 호주 미티어 부대는 적 미그 15기 1기를 격추했지만, 호주 미티어 기 3대가 격추 당했다.

 그 중 한 명인 반스 드럼몬드 상사는 평양 동남쪽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했다가 포로가 되었다. 비록 중과 부족의 상황이었지만 미티어기의 완전한 참패였다. 소련 전투기 조종사의 회고에 의하며 역시 F-86 전투기가 가장 상대하기 힘든 연합국측 전투기였었고, 다음으로 힘든 것이 F-84였으며 그 다음이 F-80, 그리고 미티어 기가 가장 격추하기 쉬었다고 다는 것이었다.

 미티어 기는 날렵한 미그 15기를 상대하기에 너무 크고 느리고 둔했다는 평가였다. 엔진을 잠재 적국에 넘겨주어 미그 15기 같은 걸작을 탄생시킨 영국이 제작한 미티어 기가 제일 열악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한국 주둔의 호주 공군 미티어 기]



 호주 공군은 공중전에서 미티어 기가 열세에 있다는 비참한 결과를 앞으로의 작전에 반영하여야 했다. 호주 77비행대대장은 배속된 5공군 사령관에게 미티어 기들의 작전 구역을 미그 15기의 위협이 적은 북한 남쪽으로 한정해달라는 건의를 했다.

 새로 부임한 5공군 사령관으로부터 요청을 승낙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미터어 기들은 벅찬 미그 15기와 결투를 포기하고 대신 지상 공격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미 공군의 성능이 떨어지는 F-80 슈팅 스타나 F-84 선더 제트는 이미 그 임무를 대지 공격으로 전환 받았었다.

 비록 미그 기들이 출몰하는 북한 북쪽의 출격을 중지하고, 북한 남쪽 대지 공격에만 전념했지만 1953년 미티어기들은 바로 전선 북쪽 사리원 상공까지 내려온 미그기들과 격돌한 일이 있었다.

 그간 미공군들은 적지에 격돌을 피하고 숨어만 다니는 공산군 공군에서 피하지만 말고 정정당당하게 나와 한판 붙자는 조롱의 전단지를 뿌렸는데 이에 자극받은 공산군 MIG-15기들이 보조 연료 탱크를 부착하고 남쪽 깊숙이 기습해 온 것이다. 미티어 기가 미그기와 한판 붙을 뻔했는데 미 공군 18비행단의 소령의 F-86 달려와서 한 기의 미그기를 격추하여 미티어기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전쟁이 2년간 지나자 호주 공군은 조종사 부족 문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1952년부터 호주 공군은 영국공군 남아연방공군 뉴질랜드 공군으로부터 조종사를 파견 받아 비행대를 운용해야했다. 적 포화로 격추되는 전투기들도 많았고, 고참 조종사 자원들이 자꾸 줄어들어 전쟁끝 무렵에 호주 본토에서 한국으로 배치되는 조종사는 갓 비행 학교를 졸업한 평균 연령 20살의 어린 조종사들이었다.

 77비행단의 조종사들은 19,000 개인 출격을 기록했다. 호주 조종사들의 고되고 희생큰 활약은 외교적으로도 큰 결실을 가져 왔다. 그들의 뛰어난 능력은 미국으로 하여금 호주나 뉴질랜드가 염원하던 미국 뉴질랜드 호주의 군사 동맹 조약인 ANZUS 조약이 탄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호주는 공군뿐만 아니라 항공모함 15700톤급의 HMS 시드니도 파견하였다.]



 3년간의 6ㆍ25전쟁 참전동안 77비행대대는 명성을 얻는 대신 값비싼 댓가를 치렀다. 40명의 조종사가 한국 방어를 위한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30명은 전투 비행중 격추되어 전사했고, 8명은 사고로, 2명은 지상 사고로 희생되었다.

 6명은 격추된 후에 탈출했지만 공산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비행대대가 운용했던 90기의 미티어 기 중 54기가 격추ㆍ추락ㆍ 파손 등의 원인으로 손실되었다.

[미티어 기]



 77 비행대대는 전후 1954년 3월까지 김포에 주둔하고 있다가 다시 군산 비행장으로 이동하여 미국으로 들어가는 미공군 F-84 49 비행대대의 공백을 매웠었다. 그러나 비행대대 본부는 일본 이와쿠니로 돌아 와서 한 달 주기로 돌아가며 군산 비행장에 돌아와 주둔했었다.

 휴전이 되자 77비행대대는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1954년 11월 선편으로 일본을 떠났다. 77비행대대는 1954년 12월 3일 호주로 돌아왔다. 여담이지만 호주의 미티어기는 한국을 떠났지만 호주기라는 애칭을 50~60년대 한국에 남겼었다. 김포와 군산 비행장을 오가며 활동하던 미티어기는 그 독특한 디자인의 기체가 한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었다.

 한국인들은 미티어같은 수직익을 가진 미군의 F-80, F-84들도 호주기라고 총칭했었다. 호주기의 인상은 전투기에서 머물지 않고 한국 일반 사회에 까지 퍼졌었다. 동작이 빠른 사람을 호주기라고 별명을 짓는 등 한국 민족은 호주기를 빠른 것의 대명사로 활용하였다

 77비행대대는 현재 미 해군이 쓰는 것과 같은 형인 F/A 18 호넷기로 장비하고 호주 영공을 지키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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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로 남은 이야기, 장진호 전투(2/3)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11.14 13:09

 11월 중순이 되었을 때 미 해병 1사단의 선도 부대는 인공호수인 장진호 인근의 하갈우리(下碣隅里)까지 진격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미 10군단의 여타 부대에 비한다면 상당히 늦은 진격 속도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전선의 상황은 상당히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지난 10월 25일 등장한 중공군으로 말미암아 전선의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는데, 가장 크게 문제가 발생한 곳이 미 8군 우익을 담당한 국군 2군단 지역이었습니다.

[미 해병 1사단의 진격속도는 상대적으로 늦었습니다]



 만일 이곳이 붕괴된다면 미 8군과 동부전선의 미 10군단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발생하여 전선이 단절될 우려가 컸고,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가장 가까이 있던 미 해병 1사단에게 장진호에서 낭림산맥을 넘어 강계방향으로 진격하여 미 8군과 연결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너무 앞만 보고 공격만 하다가 벌어진 전선의 간격을 막기 위해 내린 고육책이었습니다.

 미 해병 1사단은 7연대가 유담리로, 5연대가 무평리 방향으로 진격을 개시하였으나, 11월 27일 중공군의 강력한 저항에 저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교전이 아니라 매복하고 있던 10배 가까운 적들이 쳐 놓은 포위망 안에 미 해병 1사단이 들어와 있던 무시무시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사실이 정찰대에 의해 확인되자마자 사방팔방에서 중공군의 공격이 개시되었습니다.

[중공군이 쳐 놓은 포위망에 갇혔습니다.]

 이것은 미 해병 1사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전선에서 동시에 일어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미 해병 1사단에게 가해진 압박은 실로 대단하였습니다. 장진호 일대에 고립된 2만의 미 해병 1사단을 포위한 것은 8만으로 추산되는 중공군 9병단이었는데, 함경도 일대에 출몰한 중공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미 해병 1사단이 제거되면 그 북쪽에 있던 나머지 미 10군단 소속 부대들은 자동적으로 고립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해병대는 미 10군단 전체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포기하기 않고 탈출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중공군 못지않은 무서운 적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밤에 영하 30도 가까이 내려가는 날씨였습니다. 수많은 병사들이 처음 겪어보는 무서운 혹한에 노출되어 하염없이 쓰려져 갔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병사들도 동상으로 손발을 잃게 된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후 미군의 동계전투 전술이 새롭게 연구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예하 5연대와 7연대가 적진을 뚫고 하갈우리로 철수하는데 성공합니다.]



 철수명령이 하달되자 스미스는 가장 앞서 있던 양 연대를 12월 4일, 사단사령부가 있는 하갈우리로 철수시키는데 극적으로 성공하였습니다. 중공군 4개 사단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혹한의 날씨에 부상병을 둘러매고 이룬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하갈우리에는 4,300여 부상자를 포함한 10,000여명의 병력과 각종 장비가 집결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황초령을 넘어 함흥까지 온전히 철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때 중장비는 유기시키고 병력만 공중으로 철수하라는 제의가 들어왔으나, 스미스는 최소한 2개 대대가 마지막까지 활주로에 잔류해야 하는데 이것은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행동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단 4,300명의 부상자만 수송기로 공수하고, 미 해병 1사단은 탈출길에 올랐는데, 그들이 장진호에서 써 내려간 위대한 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갈우리 임시 비행장에서 이송되는 부상병]



 다행히도 진격 당시에 곳곳에 확보하여 놓은 보급로와 물류 기지로 미 해병 1사단이 극악한 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고원의 하갈우리에 만든 임시 비행장은 미 해병 1사단이 살아나게 된 결정적인 생명선이었습니다.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툭하면 미 해병 1사단의 진격 속도가 지지부진하다고 불만을 표시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신중함이 미 10군단 전체를 살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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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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