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본 6ㆍ25전쟁(2) 노섹 감독의 '한국정찰대'

생생! 6·25/할리우드가 본 6·25전쟁 2012.02.10 13:45


o 감독: 막스 노섹

o 제작: 잭 스워츠 프로덕션
o 배역: 크레이그 중위(Richard Emory) 형‘김’(Benson Fong), 동생(Li Sun),병장 에이브람스(Al Eben), 한국 여성(Teri Duna),다이크스 상병(Danny Davenport)등
o 상영시간: 59분 
o 색상: 흑
o 배급: 이글-라이온 
o 제작연도: 1951년

 요즈음 가장 섹시한 남자배우의 하나로 각광받는 조니 뎁이 주연한 영화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ies)’가 2009년 8월 국내에서 개봉됐다. 액션 범죄영화 ‘히트(Heat)’로 우리에게 친숙한 마이클 만 감독의 작품이다. ‘퍼블릭 에너미’는 미국 대공황기의 전설적인 은행 강도 존 허버트 딜린저(John Herbert Dillinger, 1903~1934)의 생애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딜린저는 식품점에서 50달러를 강탈한 혐의로 8년 반 동안 수감됐다가 1933년에 출감한 후 1934년까지 약 1년 동안 20여 개의 은행을 털고, 4개의 경찰서를 습격한 희대의 강도였다. 그의 최후도 극적이었다. 1934년 극장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짧은 생을 마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이런 딜린저의 일생은 극화되기에 충분했으며, 그의 사망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설·영화·TV드라마에서 종종 다뤄지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최초로 딜린저를 영화화한 것은 미국인이 아니라, 나치를 피해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인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막스 노섹(Max Nosseck, 1902~1972) 감독이다.

  6·25전쟁에 관한 할리우드 최초의 극영화도 노섹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1951년 1월 15일, 이날은 ‘한국 정찰대(Korea Patrol)’라는 세계 최초의 6·25전쟁 극영화가 개봉된 날이다. 전쟁 발발 7개월이 채 안 되는 때였다. 막스 노섹이 감독하고, 잭 스워츠 프로덕션이 제작한 이 영화는 59분짜리 흑백영화다.

 ‘한국 정찰대’는 59년 전에 상영된 이후 잊혀진 영화다. 스타급 배우가 출연하지 않았고, 저예산으로 제작된 데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이 영화 포스터에 광고된 것과 달리 ‘맥박이 뛰는 드라마’ ‘당신이 결코 잊을 수 없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고, 이야기의 전개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관객에게서 멀어진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이 영화보다 보름 뒤에 개봉된 영화 때문이었다. 사무엘 풀러(Samuel Michael Fuller, 1911~1997)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6·25전쟁 영화의 고전 중 하나인 ‘철모(The Steel Helmet)’가 그것이다. ‘철모’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소개하기로 한다.

 ‘한국 정찰대’가 오늘날 세계 영화팬들의 관심 밖에 있지만 우리에게는 할리우드, 나아가 세계 최초의 6·25전쟁 극영화라는 점에서 분명히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지면상으로 영화의 내용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 영화는 북한 공산군의 침략 직후 소집된 안보리 긴급회의의 실제 자료화면으로 시작된다. 안보리는 북한 공산군이 즉각 38선 이북으로 철수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이어 내레이터가 북한의 침략 시 한국에는 500여 명의 미군 군사고문단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이 영화는 유엔군이 전투에 가담한 최초의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북한군의 침략이 있던 날, 크레이그 중위와 다섯 명의 다른 정찰대원들은 두 개의 주사위로 하는 게임을 하며 쉬면서 북한군이 침략할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그때 크레이그가 사령부로부터 무전을 받는다. 북한군이 침략했으니 ‘마벨’이라는 작전계획을 수행하라는 명령이었다. 북한군이 건너게 될 교량을 확보하든지 파괴하라는 것이다. 또 다른 2개조의 정찰대가 크레이그 정찰대의 임무 수행에 협조할 것이라는 정보도 받았다.

 크레이그는 2명의 미군 병사와 3명의 한국군 정찰병과 함께 북한 비행기를 피해 숲으로 이동하며 목적지로 접근한다. 그런데 사령부에서 다시 연락이 온다. 다른 2개조의 정찰대가 적군과 조우해 전멸했다는 것이다. 이어 한국군 전령 1명이 추가 명령을 갖고 크레이그 정찰대로 찾아온다. 전령은 이미 크레이그 정찰대의 한국인 조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형과 재회한다.

그런데 형은 동생을 보자 놀란다. 미국인들을 적이라고 믿고 있는 동생이 나타났고, 더구나 동생이 한국 ‘군복’을 입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왔다고 믿으며 미군과 함께 근무 중인 형으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어쨌든 동생은 사령부의 명령이라며, 크레이그 중위에게 다리 폭파를 위해 가까이에 있는 적의 건설현장으로 가서 다이너마이트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찰대원들은 적군의 음성이 들릴 정도로 가까이 적진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형은 혼자 건설현장에 침입해 다이너마이트 상자를 구한다. 그 과정에서 그를 쫓아오는 2명의 적 경비병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한다.

 다이너마이트는 7명의 정찰대에게 분배된다. 형은 동생이 혹시 기회가 되면 북한군에 협조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한다. 정찰대는 다시 교량으로 행군을 계속하다 적과 조우한다. 한국 정찰대 한 명이 살해된다. 또한 교전 중에 중상을 입은 다이크스 상병은 다이너마이트를 몸에 지니고 적진으로 기어가서 자폭해 적병들과 함께 산화한다.

전쟁의 공포를 처음으로 목격한 동생은 형에게 미군을 배신하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형은 반대한다. 정찰대원들은 농가로 가는데, 그곳에서 적의 포로가 된 한국 여성을 만난다.

그들은 적 경비병들을 죽이고 그녀를 구출해 숲속으로 돌아온다. 이때 또 한 명의 한국군 정찰대원이 복부에 총상을 입고 사망하고, 미군 에이브람스 병장도 등에 칼을 맞아 죽는다.

 형 ‘김’은 크레이그 중위와 임무를 수행하러 가면서 여인에게 총을 준다. 이미 한번 도망치려고 하다가 제지된 동생을 감시하라는 것이었다. 여인은 동생에게 겁쟁이라면서, 북한인들이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얘기해 준다. 동생은 창피함을 느끼고 작전에 참여해야겠다는 자극을 받는다. 동생은 그녀가 갖고 있는 소총을 받아들고 형을 뒤따라간다.

한편 교량 근처에서 형 ‘김’은 다리에 부상을 당하고, 크레이그는 팔에 총상을 입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용감히 싸운다. 그때 동생이 도착해 북한군 몇 명을 사살하고, 다이너마이트를 받아서 교량을 폭파한다. 마침 다리 위를 지나던 최초의 북한군 탱크들도 함께 화염에 싸인다. 임무를 수행한 동생과 형, 그리고 크레이그는 죽은 동료들을 기억하면서 부대로 돌아온다.

비록 관객들과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외면했지만, 필자는 이 작품의 스토리 전개가 나름대로 탄탄했다고 본다. 제작 시간과 예산이 충분했더라면 이 영화가 성공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다음과 같은 매력적인 착안을 했기 때문이다.

 첫째, 6·25전쟁 중의 형제애를 다뤘다는 점에서 당시 한국의 시대상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이 점에서 강제규 감독, 장동건·원빈 주연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를 연상시킨다. 두 형제의 비극적인 운명과 형제애를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는 대박을 냈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두 형제가 마침내 영웅적인 행동을 함께 하는 ‘한국 정찰대’는 흥행에 실패했다.

 둘째, 교량 폭파라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런 가상의 이야기가 이 작품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할리우드의 또 다른 6·25 전쟁영화 ‘도곡리 다리들(The Bridges at Toko-Ri, 1954)’에서는 잘 극화돼 아직도 세계 영화팬들의 호평을 받는 명화가 됐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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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쓴 신화, 백마고지전투(3/3)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12.15 19:57

 1952년 10월 6일, 적들이 역곡천을 고의로 범람시켜 아군의 증원을 차단시킨 후, 제30연대가 점령하고 있던 395고지 일대의 진지에 격렬한 포격을 개시하면서 피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포격 후 연이어 개시한 중공군의 3차례 공격을 아군이 모두 격퇴하였지만 병력을 대폭 증강한 적이 너무 지쳐있던 아군을 10월 7일 재차 공격하자 고지가 피탈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습니다.

[ 드디어 적들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제28연대가 즉시 반격에 나서 고지를 탈환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아군은 최대한 불필요한 사상을 막고 전투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예비대를 적절히 활용해 순차적으로 작전에 투입하였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군의 희생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고 395고지는 아군과 적들이 흘린 피로 뻘겋게 물들어가면서 양측 모두 인명 피해가 급격히 늘어갔습니다.

 전투 개시 불과 3일이 경과하였을 때, 돌아가며 방어와 탈환에 나섰던 제28, 30연대들은 더 이상 전투에 투입되기 곤란할 만큼 출혈이 심하였습니다. 하지만 적 제113, 114사 또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전선에서 물러나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양측 모두 예비로 아껴두었던 제29연대와 제112사 마저 동원되었고 이들 또한 처절하게 피를 흘려 고지를 적셔갔습니다.

[ 부상당한 9사단 장병들 ]



 1952년 10월 6일부터 장장 열흘에 걸친 전투로 무려 12차례의 쟁탈전이 벌어졌고 7번이나 고지의 임자가 바뀌었습니다. 해발 400미터도 되지 않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양측이 퍼부었던 포탄만 해도 무려 30만 발 정도로 추정되고 하루 동안에 주인이 서로 뒤바뀐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아군의 인내심은 중공군을 압도했고 이런 놀라운 9사단의 모습에 중공군은 서서히 질려갔습니다.

 결국 10월 15일, 9사단의 놀라운 분투에 중공군은 백기를 던졌습니다. 사실 중공군 38군은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더 이상 투입할 자원도 없었습니다. 고지 주변에서 확인된 중공군 시신만도 1만 4,389구였는데 이는 38군의 60퍼센트 정도였고 부상자까지 따진다면 38군이 전투를 지속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한마디로 무참하게 녹아버린 것이었습니다.

[ 더 이상 감내할 수 없을 만큼 중공군의 출혈이 커졌습니다 ]



 아군의 피해도 컸습니다. 3,146명의 국군이 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희생됐습니다. 하지만 전쟁 내내 국군이 하나의 거점을 사수하기 위해 이렇게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고 대대적인 승리를 거둔 경우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이 전투의 후유증이 얼마나 컸던지 중공군이 더 이상은 피를 부어대는 고지전에 매달리지 않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병력을 마구 소모할 줄만 알던 중공군도 무서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국군은 철원평야를 아군의 통제 하에 두면서 작전 주도권을 계속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95고지는 전투 중 실시된 엄청난 포격으로 말미암아 높이가 1미터정도 낮아졌을 정도로 황폐화됐는데, 능선의 모습이 마치 말 등처럼 생겼다 하여 이후 백마고지로 명명되었고 국군 역사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적 1개 군단을 궤멸시킨 제9사단에게는 백마부대라는 영광된 호칭이 부여되었습니다.

[ 백마고지전투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



 이 글 처음에서 설명한 것처럼 전쟁 중반기이후부터 벌어진 고지전은 승리로 전쟁을 끝맺겠다는 의지보다는 휴전을 염두에 둔 차선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고 전투가 쉬웠던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전쟁 지휘부를 당혹하게 만들만큼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희생을 감추고 지켜낸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었고 그중에서도 백마고지 전투는 자유의 증거라 하겠습니다.  //끝//

 P.S. 이로써 ‘생생 6ㆍ25’코너에 지난 1여 년간 연재한 ‘6ㆍ25전쟁 10대 전투사’가 끝났습니다. 본 연재는 관계기관 간행 공간사를 기본으로 최근까지 연구된 자료를 참고하여 집필하였습니다. 군데군데 오타가 있고 생략한 부분도 많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집필자의 능력부족 때문이며 이 점에 대해 양해의 말씀을 구하고자 합니다. 혹시 이후에 내용과 관련하여 질문이 있으면 ‘http://blog.chosun.com/xqon (august 의 軍史世界)’에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ugust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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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쓴 신화, 백마고지전투(1/3)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11.29 19:27

 6ㆍ25전쟁은 끝을 맺지 못한 전쟁입니다. 국토는 전쟁 이전처럼 계속 분단된 상태고, 북의 계속되는 도발로 인해 이전보다 더 팽팽히 대치중인 상태입니다. 정확하게 3년 1개월 2일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6ㆍ25전쟁은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3년이 넘는 시간 이 전쟁을 분석해 보면 군사적으로 가장 극적인 전투가 벌어진 순간은 전쟁 초기 1년간뿐이었습니다.

[6ㆍ25전쟁은 초기 1년간 극적인 작전이 모두 벌어졌다고 보아도 될 정도입니다.]



 전쟁이 발발한지 거의 1년이 되는 1951년 5월말의 중공군 제6차 공세 이후부터 휴전까지 전선의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전쟁 초기 1년 동안 서울의 주인이 무려 4번이나 바뀌었을 만큼 남북으로 무려 2,300여 킬로미터를 쉴 새 없이 오르내렸지만, 나머지 2년 동안은 겨우 50여 킬로미터 정도를 밀고 당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전쟁 종결에 대한 목표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이 남침을 개시하여 낙동강까지 밀어붙였을 때, 우리가 반격에 나서 한만국경까지 달려갔을 때, 그리고 중공군이 참전하여 무려 여섯 차례의 대공세를 연이어 계속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피아 모두는 전쟁을 자신의 승리로 종결 짖겠다는 의지가 강하였습니다. 그것은 전쟁을 벌어진 이상 당연한 이치였고, 그렇기 때문에 승기를 잡았을 때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켜 끝장을 보려하였던 것입니다.

[피아 모두 승기를 잡았을 때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1951년 6월이 되자, 어느덧 전쟁을 주도하던 미국과 중국 모두는 승리에 대한 집념을 내려놓았습니다. 최초 세 차례의 공세에서 아군을 매몰차게 몰아붙여 재미를 보았던 중공군도 이후 1951년 봄에 연이어 벌인 일련의 공세에 실패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자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유엔군의 화력을 이길 수는 없다고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전쟁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온 미군도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중공군에게 어이없이 무너졌었지만, 중공군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한 이후 유엔군은 눈앞에 개미떼처럼 밀려오는 적들이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돌적이었던 밴 플리트(Van Fleet) 신임 미 8군사령관은 북으로 내달리기 위해 유엔군사령부에 공세를 허락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을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1951년 후반기에 유엔군이 북진을 개시하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군이 주도권을 다시 잡았지만 그렇다고 공세를 펼치기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지난 가을 북진 당시에 유엔이나 미 행정부는 그 한계선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로 보았습니다. 유엔군 입장에서는 국경선까지 진격하여 적을 소탕하면 원론적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반도에 내려온 중공군은 엄연히 교전 대상이었는데 단지 이들을 만주로 몰아낸다고 과연 중국이 전쟁을 포기할 것인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유엔군 입장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은 정치적 한계였지만, 참전을 단행한 중공군 입장에서는 단지 하나의 강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만주로 확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이곳까지 진격하여도 전쟁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였습니다. 따라서 정치 외교적으로 종전을 이루지 못하는 한, 군사적 공세로 전쟁을 마무리 짖지 못할 가능성이 컸고, 때문에 군사적으로 우위에 섰음에도 재 북진을 주저한 것입니다.

[전쟁은 성격이 바뀌면서 고지전으로 변하였습니다.]



 결국 중국도 미국도 전쟁을 일방의 승리로 끝낼 수 없다고 판단이 서자, 지지 않는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 짖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전쟁 이전과 비슷한 상태로 전선이 형성된 바로 지금, 휴전을 하는 것이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었습니다. 결국 회담은 시작되었고, 그러다보니 전쟁의 목표는 휴전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6ㆍ25전쟁 후반기를 상징하는 고지전이 개시된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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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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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puter Network 2012.02.10 1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2. 2012.04.10 0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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